개구리

모옌의 소설 "개구리"를 통해 중국 현대사의 격변 속에서 살아가는 복잡한 인간 군상을 살펴보세요.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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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점심시간에 회사의 책장에 꽂혀있는 개구리라는 책을 발견했다. 나는 중국 소설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바가 없었다. 모옌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나에게는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이다. 어렸을 때에 상하이 여행을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중국이라는 나라는 나에게는 낯선 나라이다. 중국 소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의 100페이지까지 읽는데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은데다, 중국 인물들의 이름이 헷갈렸다. 위안롄, 위안싸이 등 같은 성을 가진 인물들이 나올 때에는 특히 더 헷갈렸다.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중국 현대사들에 대해 찾아보며 책을 읽다보니, 책을 읽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을때까지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심지어는 편의점에 물건을 사러 갈 때에도, 책을 들고가서 읽으면서 갔다. 나에게 개구리는 너무 신선하면서도 충격과 가르침을 많이 주는 책이었다.


소설의 구조

  이 소설의 구조는 매우 특이하다. 소설은 주인공인 커더우가 스승인 스기타니 요시토에게 보내는 서신의 형식으로 이어진다. 처음에 책을 읽을 때 작가가 지인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소설이 시작된 상황이어서 당황했었다. 소설은 후반부까지 서신체 형식으로 이어지다, 마지막 부분은 커더우가 쓴 시나리오로 끝난다. 소설의 초반부에 커더우는 스기타니에게 시나리오를 써서 보내주겠다고 말하는데,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대약진운동 (大躍進運動)

  이 소설의 시작은 둥베이 지방(東北地方)에서 커더우와 그의 동네 친구들의 유년시절로부터 시작된다. 이 시기는 중국의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이 진행된 시기로 보인다. 대약진운동은 1958년부터 1962년까지 진행된 중국의 사회주의 경제 정책이다. 당시 마오쩌둥 주석은 앞서가는 소련을 보며,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경제발전의 인프라가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무리한 계획을 세운다.

  대약진운동의 1차 목표는 농업과 제철업의 발전이었다. 하지만 대약진운동의 구체적인 방안은 체계적이지 않은, 주먹구구 방식으로 진행된다. 농업 생산량을 위해 목재 가옥을 태워서 비료로 만든다던가, 집집마다 철을 생산하기 위해 불순물이 많은 철기구들을 모두 녹여내는 등 무리한 시도들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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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약진운동 시기에 중국 농민들이 철을 생산하는 모습


  이러한 무리한 시도들은 오히려 중국 인민들의 경제를 후퇴하게 만든다. 특히 농업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단위면적당 심을 벼의 양을 늘리는데, 오히려 이러한 조치가 벼를 시들게 해 농업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다. 소설의 초반부에서도 주인공과 아이들이 석탄을 씹어먹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시절 중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대약진운동은 결과적으로 인민들이 공산당에 큰 반감을 사게 만들었다고 한다.


문화대혁명 (文化大革命)

  대약진운동의 처참한 실패 이후, 마오쩌둥은 정치적인 입지를 크게 잃게 되었다. 자신들을 따르던 인민들이 대규모로 아사하게 되니, 그의 지지기반 또한 자연스럽게 약해졌다. 그와 동시에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이 실용주의 정책은 마오쩌둥의 권력을 위협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오쩌둥이 정치적 기반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국민당으로부터 공산당을 지켜낸 국부였고, 중국 공산당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마오쩌둥은 잃어버린 자신의 권력을 찾기 위한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해서파관(海瑞罢官)> 사건이 일어난다. 한 희극이 대약진운동과 마오쩌둥을 비판한 것이라고 지목되었다. 마오쩌둥의 급진적인 지지자들은 이에 대해 분노했는데, 마오쩌둥은 오히려 이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그 유명한 홍위병(紅衛兵)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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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병 완장에 그러졌던 로고. 마오쩌둥의 글씨라고 한다.


  문화대혁명은 해서파관으로 시작되었지만, 특이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마오쩌둥은 당시의 중국의 어려움을 부르주아와 기존의 낡은 것들(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습관)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홍위병들에게 낡은 것들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한다고 선동했다. 홍위병들은 중국에 있던 "낡은 것들"을 파괴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문화재드이 파괴되었고 지식인들은 숙청당했다. 중국의 경극, 무술등도 이 때에 다수 파괴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홍위병들은 나중에는 마오쩌둥의 가족들마저 척결의 대상으로 지목한다. 이에 마오쩌둥은 홍위병들을 경계하였고, 결국에는 홍위병들을 시골로 보내 지방을 혁명하라고 명령한다. 하방운동(下放運動)이 또다른 혁명인 것처럼 선동하여, 홍위병들을 뭉치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시골로 보내진 홍위병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올 수 없었다.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소설을 읽으며 그 분위기가 어땠는지 피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상 소설의 중심인물은 커더우의 고모인 완신이다. 완신은 공산당에 충성하는 산부인과 의사였다. 그와 연인이었던 왕샤오티는 공군 조종사였다. 그런데 어느날 왕샤오티는 비행기를 타고 대만의 장제스에게 투항한다. 완신은 열렬한 공산당원이었지만, 왕샤오티가 대만으로 도망갔다는 사실로 인해 홍위병들의 타겟이 된다. 완신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안전을 위해 더 적극적인 공산당원이 된다.


계획생육정책 (計劃生育政策)

  완신이 더 충성스러운 공산당원이 되는 방법은 더 많은 아기들을 낙태시키는 것이었다. 왜 완신은 아기들을 낙태시켜야 했을까 ? 계획생육정책(計劃生育政策)은 중국에서 1978년에 시작되어 2021년에 폐지된 정책이다.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면, 중국 가정에는 1명의 자녀(최대 2명)의 자녀만 낳도록 허용하는 정책이다. 중국의 계획생육정책은 중국헌법에도 명확히 명시되어 있다.

국가는 인구의 증가가 경제와 사회발전계획과 부합하도록 계획생육(计划生育)을 추진한다.
-중국 헌법 제 25조

  예상할 수 있지만, 이러한 정책은 많은 비인간적인 일들을 야기했다. 먼저 이미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새로운 아기를 가지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아기들이 부모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낙태수술을 받게 되었다. 국가권력이 국민(인민)들의 생육까지 통제하는 사회의 모습이, 마치 하나의 디스토피아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러한 정책은 중국 사회의 성비 불균형을 초래했다. 중국의 농어촌 지역에서는 예외적으로 최대 2명의 자녀를 가지는 것을 허용했다. 만약 첫째 아이가 여자아이인 경우, 8년 후에 한 명의 자녀를 추가로 가지는 것을 허용했다. 농어촌 가정에서는 육체노동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이 예외조항은 남아선호사상을 도와주는 하나의 장치였다. 둘째 여자아이가 태어났을 때, 절망하는 소설속의 인물들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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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위해 늦게 결혼하고 계획생육을 합시다!
-계획생육정책 당시에 사용된 중화인민공화국의 포스터

  완신은 산부인과 의사였다. 그녀는 가오미 둥베이향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아기들을 받아주었다. 계획생육정책이 시행되자, 역설적으로 그녀는 생명의 탄생을 돕는 사람에서 생명을 제거하는 사람이 된다. 더불어 그녀의 연인이었던 왕샤오티가 대만으로 도망가자, 그녀는 홍위병 대장인 샤오샤춘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계획생육정책에 참여한다.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완신은 계속 복잡한 상황에 놓인다. 어렸을 때는 일본군에 맞서고, 성인이 되어서는 평생 공산당에 충성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완신은 호탕하게 잔치에서 마오타이를 마시는, 듬직한 장군과 같은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동시에 완신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아기의 목숨을 빼앗는 무자비한 모습도 보인다. 진통을 겪는 산모가 생기면 달려가 출산을 도와주지만, 계획생육정책에 반하는 임신을 한 가족에게는 끝까지 쫓아가 낙태시술과 정관수술을 받게 한다.

  완신은 조카인 커더우의 아내에게까지 낙태수술을 받게 한다. 커더우의 아내 왕런메이는 낙태수술을 받다 사망하게 된다. 왕런메이 뿐만 아니라, 계획생육정책으로 인해 사망한 산모들은 매우 많았다. 불법적으로 출산을 하거나 낙태를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산모들과 아이들이 사망하게 된다. 완신의 잘못이라고만 말할 수 없지만, 그녀는 많은 아기들과 산모들을 죽게 만든다.

  완신은 마치 철로 만든 사람인 듯했다. 완신은 자신에게 대적하는 상대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었다. 완신의 내면적인 심리상태를 묘사하는 장면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가끔씩 나오는 그녀의 행동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심리적으로 괴로워하고 있는지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완신은 슬픔에 절규를 하거나, 노인이 된 후 수많은 아이들의 환상들에게 둘러쌓여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노년에는 남편인 하오다서우가 만드는 점토 인형들을 자신이 낙태시킨 아이들이라고 여기고, 속죄하며 살아간다. 완신은 자신이 낙태시켰던 수많은 아기들을 점토 인형으로라도 태어나게 해주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대리모

  소설을 처음 읽을 때 이름이 왜 개구리일지 궁금했었다. 소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개구리의 번식 과정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지만, 소설의 후반부에는 더 노골적인 비유들을 보여준다.

  커더우의 소학교 동창인 위안싸이는 황소개구리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안싸이의 황소개구리 양식장은 사실 대리모 중개업소였다. 계획생육정책은 인민들이 더 자녀를 갈망하게 만들었다. 커더우의 두번째 아내인 샤오스쯔는 자녀를 낳고 싶어했지만, 아쉽게도 커더우와의 자녀를 만들지 못했다. 샤오스쯔는 남편 몰래 황소개구리 양식장을 찾아가, 대리모에게 아이를 낳아달라고 부탁했다. 커더우(蝌蚪)는 올챙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사실상 주인공의 이름(필명)은 작가가 노골적으로 심어놓은 복선이었던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마지막 편지에서 나오는 샤오스쯔의 출산 과정이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샤오스쯔는 대리모를 통해 커더우의 자녀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샤오스쯔는 갑자기 진통을 느끼며 출산을 하게 되고, 완신은 샤오스쯔의 출산을 도와준다. 임신은 대리모가 했지만 출산은 샤오스쯔가 하게 되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적혀있었다. 더군다나 샤오스쯔는 당시 50세가 넘는 나이였는데, 이러한 모습들은 더욱더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그려진다. 자녀를 갈망하는 샤오스쯔와 커더우의 환각과 같은 모습들이 계속 소설 속에 그려졌다. 편지는 샤오스쯔가 무사히 출산을 마치며 행복한 모습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그 진실은 뒤에 이어진 시나리오 작품에서 이어진다. 천비와 왕단의 딸 천메이는 커더우와 샤오스쯔의 대리모였다. 그녀의 아버지인 천비는 커더우와 소학교 동창인데, 아내를 잃은 후 폐인으로 살아간다. 천메이는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지만, 화재로 인해 심한 화상을 입는다. 이후에 그녀는 황소개구리 양식장에서 일하는 대리모가 된다. 아버지의 친구를 대신 낳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하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책임지며 살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사기를 당하게 된다. 위안싸이는 출산 후에 천메이에게 아이가 유산되었다며, 약속한 돈의 1/3 만 준다. 천메이는 출산한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사기를 당했다는 괴로움 속에 살게 된다.


복잡한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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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莫言). 필명의 뜻은 "말을 하지 않는다" 이다.

  소설을 읽으며 괴로운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소설에는 수많은 비인간적인 일들이 나오지만, 일방적으로 특정 인물을 비난할 수는 없다는 점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너무 복잡해서, 그가 나쁜 행동을 했다고 쉽게 비난하기 힘들었다. 때로는 인물들이 한 행동들이 악한 행동인지 아닌지도 헷갈릴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완신은 수많은 산모와 아이들을 죽거나 다치게 했다. 하지만 그녀가 처한 상황에서, 맹목적으로 완신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모옌은 소설 속의 역사적 배경은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작가가 소설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복잡한 상황 속에, 복잡한 인물들이 섞여 비극적이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삶을 살아간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힘겹고 끈질기게 살아가는 인물들을 보며, 왠지 모르게 그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특정한 인물을 응원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소설 속에 나오는 모든 개구리들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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