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 소설 "코"와 "외투"를 통해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욕망과 관료주의를 살펴보고, 현대 사회의 가치관에 대한 생각 거리를 제공합니다.
Contents

표지
이 책의 표지는 특이하다. 책의 제목과 저자의 이름은 작게 쓰여있다. 외투, 코, 동그라미의 모습이 눈에 띈다. 책의 내용 또한 이 책의 표지처럼 특이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나도 저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특별한 글을 쓴 니콜라이 고골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니콜라이 고골 또는 미콜랴 호홀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난다. 그의 <간츠 큐헬가르텐(Ганц Кюхельгартен)> 이라는 시집을 내지만, 혹평을 받게 된다. 그는 그의 책을 전부 회수하여 불태워 버린다. 그는 하급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그의 경험은 그의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후에 그가 낸 작품들은 흥행에 성공하여 그의 생활도 조금 나아진다. 당시의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조교수까지 일했으나 작품에 전념하고자 3년만에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그만둔다.
이후에 그는 <죽은 혼>을 발표하고, 대중적인 성공을 이룬다. 그는 <죽은 혼> 2부를 집필하려 했으나,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그는 <죽은 혼> 2부의 원고를 다 태워버리고 극단적으로 고행을 수행하다가 모스크바에서 사망하였다. <죽은 혼> 과 함께 발표된 <외투> 는 러시아 문학사상 최고의 단편소설이다.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tourgrim/222639101984
코
이발사인 이반 야꼬블레비치에게 당황스러운 일이 생긴다. 아침에 딱딱한 빵을 잘라 먹으려 하는데, 그 안에서 코가 나온 것이다. 코가 나온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는 그 코를 알아보게 된다. 그 코는 그의 단골 손님인 꼬발료프의 코였다. 꼬발료프는 8등관 공무원이었는데,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야꼬블레비치는 그 코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한다. 누군가가 알아채면 자신이 곤경이 처할 것이기 때문에, 그는 몰래 코를 버리려 한다. 그는 길에다 슬쩍 코를 떨어뜨리고 가는데, 경찰관이 그가 물건을 흘렸음을 알려준다. 그는 코를 개울 다리 위에서 떨어뜨리고 만다.
야꼬블레비치에게 꼬발료프의 코가 있었다는 것은, 꼬발료프는 코가 빠진 채 지냈다는 것이다. 그는 집을 한참동안 찾다, 신문사에 잃어버린 코를 위한 광고를 내러 간다. 하지만 신문사는 그런 터무니없는 광고를 내줄 수 없다고 그 요청을 거절한다.
황당하게도, 꼬발료프의 코는 신사 행세를 한다. 심지어 그는 꼬발료프보다 높은 직책을 가진 관리 행세를 한다. 꼬발료프는 코를 쫓아 붙잡지만, 코를 다시 붙이려 하자 코가 붙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어느 날 코는 다시 꼬발료프의 코에 붙게 되고, 그는 다시 원래대로 오만한 삶을 되찾게 된다.
고골은 19세기 욕망과 관료주의에 빠진 러시아 사회를 우화적으로 잘 보여준다. 하지만 꼭 19세기 러시아의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질만능주의는 현재도 유효하며, 어쩌면 더 심해졌을 것이다. 나와 우리 사회의 가치관에 대해 한 번 다시 생각해 보게 해 주는 작품이다.

이미지 출처: https://mi-galka.livejournal.com/20697.html
외투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9급 관리인데, 스스로를 부양할 정도의 적은 돈을 벌며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와 소극적인 성격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한다. 하지만 아까끼예비치는 그러한 상황에도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간다.
그런 단조로운 그의 생활에 큰 시련이 생긴다. 외투가 너무 낡아 더 이상 제 구실을 못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든 외투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려보고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재봉사를 찾아가보지만, 새 외투를 장만해야 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게 된다. 장고를 거듭한 끝에 그는 딱 일년만 생활비를 줄이기로 결심하고, 허리띠를 졸라맨다.
결국 그는 그토록 원하던 외투를 구매하게 되고, 직장에서는 그의 외투를 위한 파티도 열어준다. 하지만 모두가 불안해했듯이, 이러한 행복은 바로 무너지게 된다. 파티를 마치고 밤늦게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강도를 만나 외투를 강탈당하게 된다.
너무나 소중했던 외투를 하루만에 잃어버리게 된 그는 파출소, 경찰소, 주요 인사를 찾아가며 도움을 청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주요 인사는 그의 권력을 이용하여 아까끼예비치에게 호통을 치고 면박을 준다. 결국 아까끼예비치는 추위와 정신적인 고통에 건강이 악화되고, 얼마 안되어 죽고 만다.
그의 삶은 허무하고 한이 맺혀있는 듯했다. 아까끼예비치가 귀신이 되어 동네에 출몰한다는 소식이 퍼져나갔다. 밤에 한맺힌 아까끼예비치가 나타나 외투를 강탈한다는 것이었다. 살아 생전에는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죽음 후에 오히려 아까끼예비치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사실 그 귀신의 정체는 사실 아까끼예비치의 외투를 강탈한 강도였으며, 아까끼예비치의 삶은 허무하고 안타까운 죽음으로 진작에 끝나 있었다.
작품에서는 외투가 한 인물을 괴롭게, 즐겁게, 행복하게, 그리고 죽음으로 내몬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러한 이야기가 재미있게 읽히지만, 하지만 우리의 삶도 그와 크게 다르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외투는 집, 누군가의 외투는 돈, 누군가의 외투는 명예가 되곤 한다. 외투가 완전 찢어져 추위에 떨고, 외투를 살 돈을 모으지 못하는 상황을 끊임없이 걱정하는 아까끼예비치는 우리에게도 많은 점들을 생각하게 한다.
아까끼예비치는 왜 외투를 사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외투에 대해 정말 좋아했고, 관심이 많았을까? 아까끼예비치는 원래 외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좋아하던 것은 남들은 보잘것없다고 느꼈던 그의 일이었다. 남들은 뻔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그는 좋아했다. 그러던 그가 외투에 대해 집착하게 되었다. 거센 돌풍을 피하고 따뜻하고 싶었던 그의 작은 바램은 점점 커져, 외투에 대한 집념으로 바뀌었다. 아까끼예비치의 외투를 보며 "내집마련" 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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