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연말회고
2024년 한 해 동안 프로젝트, 스터디, 오픈소스, 달리기, 독서, 그리고 반가사유상 굿즈를 통해 스스로를 수련했던 경험을 담은 글입니다.
Contents
2024년은 스스로를 수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보통의 해라면 성장했다고 표현했겠지만, 올해는 성장보다는 수련에 집중한 한 해였던 것 같아요. 왜 성장이 아니라 수련일까요 ?
어쩌면 두 단어는 비슷하면서도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장이라는 말을 듣거나 읽으면 새끼였던 고양이가 밥을 먹고 성묘가 되거나, 씨앗이 물을 받아 싹이 틔우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에 반해 수련은 가부좌를 하며 명상하는 모습이나, 묵주를 돌리며 기도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성장은 외부로 에너지가 뻗어나가는 느낌이라면, 수련은 내부로 에너지가 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2024년은 저에게 수련의 해였습니다.
프로젝트
올해는 인프랩 팀에 합류한 해였습니다. 인프랩에 입사한 5월 14일부터 지금까지를 생각해보니, 그동안 했던 스프린트와 개발 업무들이 떠오릅니다. 상반기까지 UCC 셀은 신규 제품을 개발하는 업무를 진행했고, 하반기에는 닥터 스트레인지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다국어 전환 작업을 했습니다.
팀에 합류하여 처음 진행했던 스프린트는 강의 수강 과정에서 과제(미션)을 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데미에서 강의의 과제를 풀어보며 스스로 공부를 해봤던 경험이 좋았어서, 인프런의 과제 기능은 어떠한 모습이 될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UCC 셀은 과제 만들기를 위한 전초 작업으로 기존 기능을 신규 스택으로 전환하는 작업까지 진행하고, 회사의 우선순위에 따라 닥터 스트레인지 전환 작업에 합류하였습니다. 과제만들기를 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인프런의 국제화 작업에 참여하며 더 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제가 그동안 하지 않았던 고민들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먼저 기술적으로는 처음 경험해 보는 다국어 프로젝트였습니다. 유저에게 제공하는 기능은 동일하지만, 다양한 언어와 시간대의 유저들을 지원해 주는 과정에서 그동안 기술적으로 하지 않았던 고민들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한 닥터 스트레인지는 많은 프로덕트 팀원들이 함께 모여서 작업한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QA 과정까지 합치면, 거의 모든 직원들이 동참했던 프로젝트인데, 저에게는 이러한 경험이 새로웠습니다. 평소에는 같이 협업을 많이 하지 않던 팀원분들과도 협업하면서 저의 일하는 방식들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반기부터는 검색엔진 셀에 합류해서, 새로운 유형의 제품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Vertex AI Search for retail, MongoDB Atlas Search 등 처음 접해보는 것들을 공부해 보고 적용해 보니 도전의식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모니터링 스터디
올해 회사에서 모니터링 스터디를 진행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스터디는 기술을 흡수하기 위한 스터디가 많았었습니다. 그에 비해 이번 스터디는 목적 자체가 실용적인 목적이었습니다. 백엔드 개발자들이 백엔드 모니터링 시스템의 가시성 개선을 목적으로 시작하게 된 스터디였습니다. 한 주마다 모여 어떻게 모니터링 시스템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는지 토의해 보고, 자신의 시스템에 적용해보는 과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모니터링 스터디가 지난 후, 이전보다 가시성이 개선되었다고 느껴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해 볼 수 있는 부분들도 많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내년에도 저희 팀에 맞는 방식으로 모니터링 시스템이 개선될 것 같아 벌써 기대가 됩니다.
오픈소스
해마다 최소 한 번씩은 오픈소스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간신히 한 번의 오픈소스 기여를 할 수 있었습니다. MikroORM 버전 업을 하는 과정에서,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버그를 발견하여 이를 fix 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버그는 고쳤지만 아쉽게도 가장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하지는 않고, 저희가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안정적인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를 진행하였습니다.
내년에는 노드 쪽이 아닌 다른 생태계에서의 오픈소스 작업도 진행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달리기
업무가 아닌 영역에서 올해에 세웠던 유일한 목표는 주기적으로 뛰는 것이었습니다. 2020년부터 주 3회 뛰는 것을 목표로 세웠지만, 연말까지 제대로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던 적은 없었습니다. 올해에는 드디어 꾸준히 주 3회 뛰기 목표를 이뤘습니다 !
지난 해들을 돌이켜보면, 러닝 페이스를 향상시키고 뛰는 거리를 늘리려고 노력했을 때에는 꾸준히 뛰자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올해에는 이런 욕심을 모두 없애고 단 하나의 목표만 세웠습니다. 바로 "천천히 뛰더라도 뛰다가 멈추지 말기"입니다. 오히려 잘 뛰려는 욕심을 없앴을 때에 목표를 이루게 되었다는 점이 역설적이라 느꼈습니다. 어쩌면 달리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10km 마라톤에 참가했습니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올해는 꾸준히 뛰는 것에만 노력했기 때문에, 페이스를 빠르게 하는 데에는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보다 기록이 꽤 나아지진 않았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놀랍게도 작년과 거의 동일한 기록이 나왔습니다. 물론 작년보다 기록이 나빠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만, 내년에는 페이스 향상에 조금 더 집중해 봐야 하겠습니다.
바로 윗 문단에서 기록에 대한 욕심을 없앴을 때에 비로소 꾸준히 뛸 수 있게 되었다고 적어놓아 놓고, 바로 다음 문단에서는 기록을 향상시키고 싶다고 적었네요. 이러한 모순 속에서 과연 내년의 저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미키7

올해 봤었던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책은 미키7입니다. 미키7은 실존의 문제에 대해 가벼우면서도 깊게 고민해 보게 해주는 SF소설입니다. 철학 시간에 나올법한 존재에 대한 질문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SF소설의 특성상 독자들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들이 많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하여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봉준호 감독님이 해당 소설의 내용을 미키17 라는 영화로 각색하여 제작하고 있다고 하셔서,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키7이라는 책은 플롯만으로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질문할 거리가 많아서 의미있었던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읽고 나서 질문을 많이₩ 할 수 있는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데, 미키7이 저에게 그런 책이었던 것 같아요.
테세우스의 배는 미키7의 내용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아테네에 귀환한 테세우스의 배를 아테네인들은 팔레론의 디미트리오스 시대까지 보존했다. 그들은 배의 판자가 썩으면 그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 튼튼한 새 판자를 그 자리에 박아 넣었다.
커다란 배에서 겨우 판자 조각 하나를 갈아 끼운다 하더라도 이 배가 테세우스가 타고 왔던 "그 배"라는 것은 당연하다. 한 번 수리한 배에서 다시 다른 판자를 갈아 끼운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낡은 판자를 갈아 끼우다 보면 어느 시점에는 테세우스가 있었던 원래의 배의 조각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 플루타르코스
수업시간이나 책에서 한 번씩은 들어봤던 내용이지만, 이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해 봤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테세우스의 배 문제를 생각해 보았는데,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니 재미있었습니다. 아래 질문은 이 책을 읽으면서 메모해봤던 질문들인데, 오랜만에 읽어보니 재미있어서 공유드립니다.
- 테세우스의 배를 그대로 분해했다 동일하게 조립한다면, 그것은 테세우스의 배일까 ?
 - 낡은 판자들만 갈아끼운다면, 그것은 테세우스의 배일까 ?
 
위의 질문들에 나는 개인적으로 "예"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니요"라고 말할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들도 많이 있지만, 저정도는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이어지자, 좀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 테세우스의 배에 있던 판자들은 모두 썩어버렸지만, 테세우스의 배의 설계도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설계도에 명시된 대로 그대로 재료를 구해 배를 만든다면, 그것은 테세우스의 배일까 ?
 - 조선시대에 지어진 수원화성은 한국전쟁때 파괴되었지만, 이후에 남아있던 설계도를 바탕으로 기존의 수원화성을 복원하였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것은 수원화성일까 ?
 - 유명한 비빔밥 맛집의 레시피를 그대로 전수받은 후, 똑같은 채소와 참기름으로 비빔밥을 만든다면, 비빔밥 맛집의 원조 비빔밥일까 ?
 - 동일한 공장에서 생산된 로봇은 동일한 로봇이라고 할 수 있을까 ?
 - 동일한 도커 이미지를 통해 생성한 컨테이너들은 동일하다고 생각해도 될까 ?
 - 동일한 Class 에서 생성된 Instance 객체들은 동일한 객체라고 보아야 할까 ? 동등성과 동일성은 우리 삶에서 무슨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 ?
 
반가사유상
뜬금없지만, 올해 가장 잘 샀다고 느낀 물건은 반가사유상 굿즈입니다. (불교 신자 아님) 반가사유상을 보고 있으면 여러 생각들을 해보게 됩니다. 반가부좌 자세로 앉아있는 인물은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중생들을 위해 상념에 잠긴 미륵보살이나 출가하기 전 고뇌하는 석가모니라고 추정된다고 합니다.

무슨 생각..?
이 굿즈에게 그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업무나 업무 외적인 고민들을 할 때, 반가사유상을 한 번씩 쳐다보곤 했습니다. 고민에 대한 답을 알려달라고 빌어보기도 했습니다. 석가모니나 미륵보살조차도 저렇게 깊게 괴로워하고 고뇌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에 약간의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렴풋이 짓고있는 저 미소가 저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한 번쯤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을 때, 이런 상징물의 도움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느꼈습니다.

책상 위의 반가사유상과 진묘수.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맘에 드는 굿즈가 많습니다.
정리
사실 한 해를 정리하는 회고 문서를 적어본 적은 처음인데, 특별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2024년의 마지막 주에 조용한 곳에 와서 글을 적으니 2024년의 저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올해의 저는 작년의 저보다 생각과 마음의 여유를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내년에도 성장과 수련의 밸런스를 갖춘 한 해를 보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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