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위기
정보 과잉 시대 속 서사의 위기를 진단하고, 이야기의 중요성과 경청의 자세를 되새겨보는 글입니다.
  우리는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흔히 정보의 홍수 라는 용어는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말한다. ChatGPT 와 같은 LLM 기반의 제품들이 나오는 것을 보며, 우리는 정보의 홍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넘쳐나는 정보의 가공과 정리 자체를 인공지능이 도와주니, 우리는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게 되었다. 일컫자면, 정보의 댐 을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4차 산업혁명" 이라는 단어는 진짜의 우리의 시대정신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왜 살면서 더 넘쳐나는 지식 속에서 공허함을 더 많이 느끼게 되었을까 ? 
철학자 한병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를 서사의 위기라고 말한다. 처음 책의 재목을 읽고난 후에, 다음의 질문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 서사(이야기)는 정말 위기를 맞고 있을까 ?
 - 만약 현 시대가 서사의 위기라면, 그것이 왜 중요한 문제일까 ?
 
  우리가 이야기를 접하는 주요 수단은 무엇일까 ?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이야기(Story)는 인스타그램 스토리가 아닐까 ?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면 우리가 아는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진정한 이야기와 서사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 오히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는 이야기를 소멸시키는 장치 중 하나가 되었다. SNS 에는 수많은 인물들과 장소가 나오지만, 사실 SNS 에는 인물이 없다. 그저 단편적인 사건의 나열들만 있을 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스토리(이야기)를 보았다고 착각하며 다음 스토리를 따라 스와이프 할 뿐이다. 
현대사회는 점점 타자를 소멸시킨다. 때로는 소멸시킬 뿐만 아니라,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미키7> 에 나오는 "익스펜더블" 처럼 착취의 대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미 우리 사회에서 타인은 소비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인스타그램의 인플루언서들은 타인을 소비의 대상을 넘어, 산업화까지 진행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또한 유튜브의 렉카 채널들을 보면, 타인을 악마화하여 타인의 소비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타인이 소멸하고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다면, 자연스럽게 이야기 또한 사라지게 된다. 이야기의 인물이 될 대상들이 사라지게 되므로, 이야기 또한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사의 소멸이 정보사회와 관련이 있을까 ? 이 책을 읽으며, 충분히 연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인류의 사회는 점점 사회 기반을 추상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테세우스의 배 문제에서도 얘기했듯이, 우리는 복잡한 사회를 논리적이고 분업화된 개념들로 바꾸어 왔다. 예를 들어, 우리의 김치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가끔씩 가족이 모여 김장을 했던 기억이 있다. 가끔씩 김치를 먹을 때에, 김치를 만들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기억나곤 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김치를 직접 만들어 먹는 가정의 수는 상대적으로 많이 줄었을 것이다. 이제는 김치를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될까 ? "중국산일까?", "신 김치일까?" 와 같은 단편적인 질문들만 하고 있진 않을까 ? 김치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의 소멸은 왜 중요한 문제일까 ? 중요한 일의 시작은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기계와 달리, 이야기를 만드려는 습관이 있다. 호모 픽투스(Homo Fictus) 라는 말도 있듯이, 인간은 예로부터 이야기를 좇아왔다. 단군신화부터 소설책까지, 인간은 이야기로부터 많은 메세지들을 도출해낸다. 때로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보다 소설 한 편이 더 많은 위로가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런 우리에게 서사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우리는 서사의 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저자는 소설 '모모'를 예로 들며 경청을 제시한다. 소설 속 모모는 침묵하며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내도록 배려한다. 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복잡한 문제도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것만으로 치유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에게는 타인을 소멸시키지 말고,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대사회는 물 흐르듯 살다보면, 이야기에 무감각해지기 쉽다. 나 또한 점점 타인과 이야기에 무관심한 날들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무감각한 날들에서 이야기가 충만한 날들을 보내야겠다.
이것도 읽어보세요